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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푼 꿈을 안고 청춘을 시작하다


상경해 매일 붙어다니던 친구가 전학을 간 이후로 혼자 오락실에 제비우스와 갤러그를 하게

되어 몇 판 못가 끝나곤 했던 중학교 생활을 마치고, 정신병동처럼 생긴 하얀 색의 철창이

드리워진 그 아래 위치한 고려고등학교[88-90년]에 진학해 남들처럼 입시공부위주 생활을

했다. 원래 성격이 내성적인 터라 여자 친구하나 못 사귀었는데, 간혹 버스 안에서 여학생

치맛자락에 스쳐 感電死할 뻔 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자율학습 시간에 땡땡이쳐

강심장으로 하던 축구가 얼마나 재미있었는지...몇몇 맘이 통하는 친구들과 주말에 종종

북한산이나 북악스카이웨이 수영장에 놀러 가곤 했다.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다닌 미술학원에서의 그림공부가 계기가 되어 중고등학교 백일장에서 종종 그림상을 타고

외부대회에도 몇번 나가곤 했다. 고3때 미술선생님의 권유로 미대에 가려고도 했지만,

당시엔 뭔가 창조적이고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었는데, 새로운 무엇인가를 구상해서

설계한다는 면에서 창조적이고 그것을 짓는다는 면에서 활동적이라 생각한 건축학과를

마음에 두게 되었다. 그러나 대개 300원을 내고는 버스를 타더라도 목적지까지 갈 수

없듯이, 공부에 대한 투자가 적었고 상경 후 쭉 지내온 정릉이 세상의 전부인줄 안 탓으로

무심코 용감하게 건축학과행 버스를 어찌어찌 탈 수는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든 잠에서

두 눈을 부비고 떠보니, 앗!!! 여기는 가고자 하는 대학교가 아니라 서울역 옆 종로학원

[91년] 앞이었다. 순간의 졸음으로 이렇게 될 줄이야는 탄식으로 시작한 재수생활이

마냥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굉장한 실력의 강사님들을 통해 6년 배운 공부보다

오히려 1년 동안 배운 것이 더 많을 정도로 그 동안의 공부에서 빈 틈과 여백을 빼곡

빼곡 채워나가는 보람이 매우 컸다. 졸면 가차없이 무는 살무사 한 마리를 가슴에 키우며

안국동 정독 도서관에서의 삼수를 배수진으로 치고 벌인 나 자신과의 싸움은 지금

생각해도 비장했던 것같다. 또한 당시 같은 반 90여명의 3분지 1이 같은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어려울 때 서로 의지했던 전국 방방곡곡의 친구들과 교우관계를 유지하게

된 것은 또다른 기쁨이었다.

 


[4] 버스 속 睡魔와 다시 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