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운동화 대신 작업화를

사람이 큰 맘을 먹고 산에 들어가 10년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으면 가망이 없으며,

그 이전에 내려와도 덜 떨어진 놈 취급을 하는 듯하다. 이제 올해 석사[97-98년(예정)]를

졸업하게 되면 7년의 시간을 건축-설계와 구조분야-에 바친 형국인데, 그래봤자 아는

것이라고는 건축이란 끝을 헤아릴 수 없이 넓은 종이에 바늘 하나 꼿을 만큼의 면적도

차지하지 못한다. 펜보다 무거운 것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손에 콘크리트를 한 번 묻혀보지도

못한 내가 어찌 콘크리트며 철골을 왈가왈부할 수 있으며, 학교에서 보기에 엉키고 뒤섞여

보이는 건설현장의 그 복잡한 흐름과 그 넓은 분야의 고려사항들을 과내도서관 비디오를

통해 우선 눈구경을 간접적으로 했지만, 어찌 강의실의 시커먼 칠판 위에 칠해진 하얀

백목과 흰 바탕에 칠해진 잉크가 건설현장 내막의 사연과 흐름을 그 꼬리라도 잡을 수

있겠는가? 이제 의자 위에서 굳어버린 다리의 근육을 다시 부활시키고자 함은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이 태어난 곳, 그 아버지격인 건설현장에서 나의 끊어진 핏줄을 다시 이어

반신불수 상태인 예비 건축인이 정상적인 건축인으로 성장하고자 함에 다름아니며,

피가 멎고 혈기 없이 창백한 이론적 지식에 현실과 경험이란 수혈을 받음으로써 살아

꿈틀거리게 함으로써, 멋있는 건축인이 되고자함에 다름아니다. 물론 운동화 대신

작업화를 신고 건설현장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미래에 대한 꿈을 수건삼아 닦을 준비가

되어있다. 삼발이의 나머지 다리를 만들 수 있는 경험의 기회가 주어져 건설현장의 땀이

쌓이고 쌓여 굳어, 그것이 설계의 날줄이 되고 구조의 씨줄이 됨을 깨달아 체득해간다면,

그 동안 추구해온 '르네상스적인 건축인'이란 작은 목표의 문턱에 닿아 그 문을 두드릴

수 있게 될 것이며, 나름대로 설정한 '그곳'을 향한 이카루스의 날개를 달게 되면 남은

일은 한 가지 뿐. 나의 작은 소망과 꿈을 세 개의 날개에 실어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을

날아 나를 찾고 나를 부리며 나를 표현하는 일이 그것이다.

비록 태양의 뜨거운 열로 밀랍이 녹아 추락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