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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J. LeMessurier의 초고층 건물에 적용된 구조시스템의 원리

William J. LeMessurier's super-tall structures :

A search for the ideal

Architectural Record 誌, January 1985에서 인용

 

 

"나는 理想이라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고무되어 있다. 나의 理想을 향한 탐색의 밑바탕에는 고상함에 대한 추구가 깔려있다. 나는 최종적으로 누구를 위해서 설계를 하는가? 그것은 나자신의 靈魂이다."

"I get very excited about the ideal. Underlying my search for the ideal is the pursuit of elegance. Who am I designing for in the end? For my own soul."

W. J. LeMessurier가 한 위의 말은 그의 공학에 대한 원초적인 지적 관심과 디자인에 대한 창조적인 동기유발의 근원을 모두 나타낸다.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남들과 구별되는 經歷은 그가 혁신적인 형태의 선두주자이며, 단순성, 우아미 그리고 경제성에 바탕을 둔 구조미학에 대한 철옹성과 같은 지지자임을 말해준다. 최근 몇 년간 그는 매우 높고, 매우 날씬한 구조물에 내포된 문제점들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다음의 글은 그런 구조물에 대한 W. J. LeMessurier의 패러다임의 전모를 나타내고 여러 개의 고층건축 설계에 대한 그의 패러다임의 적용을 검토하는 두 개의 글 중 첫 번째 글이다.

These words by William J. LeMessurier express both his fundamental intellectual interest in engineering, and his creative motivation for design. In the distinguished career he has forged, LeMessurier has been a champion of innovative forms, and an unwavering proponent of a structural esthetic based on simplicity, grace, and economy. In recent years he has focused his attention on the problems posed by very tall, very slender structures. The following article is the first of two that will explore the formation of LeMessurier's paradigm for such structures, and examine that paradigm's application in a series of skyscraper designs.

초고층 건축이란 일반적으로 건축적인 용어에서는 그 입면이 최소한 5:1의 높이 對 폭의 比를 가지는 마천루로 정의된다. 공학기술자에게 있어서, 초고층 건축이란 바람의 동력학에 대한 건물의 반응이 구조설계에 지배적인 영향 요소로 작용하는 건물을 의미한다. 풍동실험을 통해서 이런 현상이 세장비 5:1에서 7:1 사이의 구조물에 일어남을 알 수 있다. 이런 세장비를 갖는 건물에서는 수평하중에 의해 부여된 공학적 측면의 요구조건들이 수직하중에 의해 부여된 요구조건을 초월한다.(흥미롭게도, 공학적인 측면에서 초고층 건축이라고 보기에는 둔중한 40층짜리 건물이 만약 세장비가 큰 그 건물의 코어가 모든 수평하중을 부담한다면, 위에 언급한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Super-tall buildings are generally defined in architectural terms as skyscrapers with a silhouette whose proportion in height to width is at least 5:1. To an engineer, a super-tall building is one in which the response to the dynamics of wind is the dominant factor in structural design. Wind-tunnel tests indicate that this will happen when the slenderness of the load-carrying structure reaches a proportion somewhere between 5:1 and 7:1. At that point, the engineering demands posed by lateral loads exceed those of gravity.(Interestingly, it is possible for a 40-story building that appears square to be a super-tall structure in engineering terms if it has a slender core taking all lateral loads.)

건물의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생기는 수평력은 건물을 밀고젖히고(휨), 툭 부러뜨리려는(전단) 두 가지 경향을 갖는다. 구조물이 파괴에 대항해 젖먹던 힘까지 발휘해 버티는 와중에, 건물을 흔들거리게 하는 일종의 줄다리기(정치판에서는 勢싸움이라 불릴 수 있는 용어가 아닐까?)가 생겨 결과적으로 세 번째 공학상의 문제(진동)를 야기한다. 만약 건물이 지나치게 좌우로 흔들리면, 거주자들이 심적 안정감을 잃어버린다. W. J. LeMessurier는 휨, 전단과 진동의 영향을 버티어 내는 가장 이상적인 구조형태는 건물평면 상의 최외각에 위치한 연속된 파티션이 수직적으로 연속성을 가지는 시스템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조적조 굴뚝의 형태를 완벽한 초고층 구조물의 형태로 여긴다.

The laterally directed force of wind blowing against a building tends to both push it over(bending), and snap it(shear). In the structure's resistance to failure, a tug-of-war ensues that sets the building in motion, thus creating a third engineering problem--vibration. If the building sways too much, human comfort is sacrificed. LeMessurier contends that the ideal structural form to resist the effects of bending, shear, and vibration is a system possessing vertical continuity in a continuous partition lacated at the farthest extremity from the horizontal center. He identifies a masonry chimney form as a perfect super-tall structure.

굴뚝이 靈感에 의한 공학적 모델-위에 언급한 굴뚝은 그 형태가 제한 없는 높이의 가능성을 제공한다-이 아니라면, 굴뚝은 합리적인 案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창문이 없는 구조물은 건축적 모델로서는 부적당하다는 것을 꼬집어낸 최초의 인물이다. 굴뚝이란 이상적인 형태를 더욱 실제적인 골조 구조물로 바꾸어가는 과정에서, 그는 마천루를 땅에서 솟아오른 외팔보의 관점에서 생각한다.

The chimney may be a rational if not inspired engineering model-its form offers height possiblilities that are virtually unlimited-but, LeMessurier would be the first to point out that a windowless structure is inadequate as an architectural model. In translating the ideal form of a chimney into a more practical skeletal structure, LeMessurier thinks of a skyscraper in terms of a beam cantilevered from the earth.

 

[그림설명] 고층이고 날씬한 건물을 개념화하는데 있어서 LeMessurier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그것을 땅에서 솟아오른 외팔보로 간주하는 것이다. 효율적인 보는 재료를 보의 플랜지쪽에 집중시키므로,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중력하중을 받는 기둥은 건물의 평면 최외각 가장자리에 있어야만 한다-그래서 아랫 그림이 윗 그림보다 더 선호된다.

 

외팔보로서의 건물이란 개념은 그가 1967년 미국강철협회(USSC)에 의해 후원받은 리서치 프로젝트에 참가한 이래로 그에 의해서 발전되어 왔다. MIT에서 수행된 그 프로젝트는 높고 세장한 아파트와 호텔 건물을 짓는 경제적인 방식들을 조사했는데 그 결과, "스태거드 트러스"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굴뚝처럼 스태거드 트러스 시스템도 수직하중을 그 가장자리에서 모은다. 그러나 실제로 이 시스템은 90도 회전된 I형보와 더 비슷하므로 전단력을 지지하는데 마치 보의 웨브같이 트러스를 사용한다. 좀더 최근에 이루어진 그의 초고층 프로젝트들에서 그는 계속해서 수직하중을 건물의 가장자리에 혹은 가장자리 근처에 집중시킨다. 전단에 대한 설계는 대각선 가새나 혹은 바닥판을 기둥에 연결하는 강절점 연결부를 가진 골조에서 고려되도록 한다. 첫 번째 글에서 보여질 두 프로젝트-휴스턴에 지어질 Southwest Tower 은행과 달라스 중심가의 Inter First Plaza Tower-는 전단에 대한 응답이 서로 다르다. 달라스에 지어질 건물은 강절골조를 사용하는 반면, 휴스턴에 지어질 건물은 가새들의 네트워크로서 전단을 지지한다. 이 건물들의 단면을 공부할 때, 상기되어야 할 것은 마천루는 매우 구조적 형상을 가지며, 그리고 건물정면의 표현과는 달리, 기술자의 설계법에 매우 의존한다는 점이다.(누구든지 십중팔구 LeMessurier에 의한 순수한 구조체가 건물의 외피 뒤에 숨어있다는 것에 유감을 느낀다.)

This concept of building-as-cantilevered-beam has been in development by LeMessurier since he participated in a 1967 research project funded by the United States Steel Corporation. The project, conducted at MIT, investigated economical ways to build tall, thin apartment and hotel buildings and resulted in the "staggered truss" system(RECORD, June 1966). Like a chimney, the "staggered truss" system gathers gravity loads at its edges. But really more akin to an I-beam turned on end, this system uses its trusses, like a beam's web, to tesist shear. In his more recent super-tall projects, LeMessurier has continued to concentrate gravity loads at, or near, the building periphery. Design for shear has been accommodated with either diagonal bracing or a frame with rigid joints connecting floors with columns. The two projects shown in this article-the Bank of the Southwest Tower to be built in Houston and the Inter First Plaza Tower of the Dallas Main Center-differ in their response to shear. The Dallas building uses a rigid frame; the Houston building, a netwerk of diagonals. In studying the sections of these buildings, one is reminded that skyscrapers are very much structural configurations, and apart from the expression of the facades, are greatly indebted to the engineers' art.(One almost regrets that these pristine armatures by LeMessurier are eventually hidden behind a building envelope.)

모든 이상들과 마찬가지로, W. J. LeMessurier의 최근 초고층 프로젝트에 대한 패러다임은 매우 간단하다 : 굴뚝 형태는 벽을 기둥들로 분해함으로써(쪼갬으로써) 개방되고, 그 기둥들은 대각선 가새들의 네트워크 혹은 강절점 골조들에 의해서 안정된다. 이런 이상적인 사고를 실제의 특수한 경우에 적용할 때는, 기술자는 비록 이상적인 案은 아닐지라도 理想化라고 하는 사고과정에서 안내자의 구실을 하는 일반적인 설계기준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LeMessurier에게 있어서 디자인이란 일부분을 더 첨가하거나 빼서 바꿀 필요를 느끼거나 원하는 것이 전혀 없을 때만이 완전한 것이다. 디자인은 환상이나 속임수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그 해결안은 개념상으로 의심의 여지없이 명확하고 새내기 공학도를 눈 앞에 두고 그린 칠판 위의 다이어그램처럼 기본적이어야 한다. 구조는 실내의 이용과 활용을 최대화할 수 있도록 공간을 분할하는데 직접적인 역할을 하는 건물의 평면과 연관성을 가져야만 한다. 또한 구조는 시공하기에 쉬워야만 한다. 그리고 자원의 활용면에서는 요구되는 강도를 갖기 위해서 재료를 근육처럼 무조건 많이 사용하기 보다는 기하학의 힘에 의존해 경제적이 되도록 해야 한다.

Like all ideals, LeMessurier's paradime for his recent super-tall projects is disarmingly simple: a chimney form is opened by dissolving the wall into columns, and the columns are stabilized by a network of cross braces and/or rigidly joined frames. In applying the ideal to specific commissions, the engineer has steadfastly brought general design criteria to bear that, though not ideals, are certainly guideposts to idealization. For LeMessurier, a design is complete when there isn't anything that you would want or need to change by adding elements or taking them away. The design should depend on no quirks or tricks. The solution should result in a structural diagram that is immaculately clean in concept and as fundamental as the the diagrams you would put on a blackboard for an engineering student in his first year. The structure should relate to the plan, playing a direct role in the partitioning of space to maximize utility and the appreciation of the interiors. Structures should be easy to construct. And they should be economical in their use of resources, relying upon the power of geometry rather than a muscle-bound flex of material for their strength.

초고층건축의 설계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공학자가 경험을 통해 기존의 전통적인 고층건물로부터 배운 상식적인 지혜를 한 쪽으로 밀어두고 다시 기본적인 원리원칙으로 되돌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정확히 말해 LeMessurier가 한 일이다. 그의 이런 과정이 흥미진진한 가능성-단순한 높이를 뛰어넘어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의 영역을 열어준 이상적인 형태로 이끈 것이다. 공간의 가장자리로 밀고나가는 가슴설레임만큼이나 많이, 그가 건축에 의해 에워쌓일 수 있는 관심들의 너비를 존중할 필요가 있음을 알아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가 한 초고층에 관한 심포지움에서 높이를 위한 높이를 추구하는 건물의 도전에 대응해서 말하길:

The challenge of designing super-tall structures requires the engineer to set aside the common wisdom experience has taught for conventional tall buildings and return to basic principles. This is precisely what LeMessurier has done. And his process has led to ideal forms that are opening up an exciting realm of possibilities-possibilities that may reach beyond mere height. For, as much as there's a thrill in pushing at the boundary of space, LeMessurier does not fail to recognize that there is a need to respect the breadth of concerns encompassed by architecture. As he stated in a symposium on super-tall buildings, in response to the challenge of building higher for height's sake(Engineering News-Record, November 3, 1983):

"일반적인 75층 건물에 대한 좀 더 세련된 해결안을 찾는 것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더 큰 흥미가 있다. 우리는 오랜 길을 걸어서 마침내 마천루 본연의 모습을 찾아내게 되었고, 마천루를 만드는데 있어서 반드시 초고층일 필요는 없다. 공간을 개방하는데, 공간을 더 경제적으로 만드는데, 그리고 화재와 교통체계와 건물 밑바닥 거리 수준에서 보행자의 즐거움에 관련된 문제들에 대처하는 것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이런 것들은 훨씬 더 흥미진진한 문제들이다."

"There is more fun than anything else in doing a more elegant solution for an ordinary 75-story building. We have a long way to go to make the skyscraper what it really can be, and it doesn't have to be super-tall to do this. There are ways to open up space, to make it more economical and to face the problems of fire and transportation and pedestrian joy at the bottom. These are much more interesting problems."

그의 이상적 구조형태 발견 과정에서의 창조적인 노력만큼이나, 이러한 관심들도 또한 그의 이상향을 향한 지적이고 정직한 추구와 보조를 매우 잘 맞추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는 누구를 위하여 설계하는가? 사용자와 LeMessurier의 영혼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이 없다.

As with his creative endeavors in structural form, these concerns too are very much in keeping with LeMessurier's intelligent, honest search for ideals. Who is he designing for in the end? There is no conflict between the user and William J. LeMessurier's own soul.

Darl Pastorf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