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부푼 꿈을 안고 청춘을 시작하다[2]역마살의 객지생활
타는 갈증을 적시고, 각박한 도시생활에서도 항상 도시인들의 가슴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배경이 되는 시냇물과 옥수수밭을 병풍삼아
펼쳐지는 시골의 모습과 그 안에서 자연과 호흡하는 생활일 듯싶다. "망아지는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당시 맹호부대에 직업군인으로 근무하고 계시던
호랑이 같으신 아버님의 배려로 서울 큰집으로 유학을 온 외북초등학교 6학년[84년]
때까지 지낸 시골에서의 생활은 남다른 기억으로 아직까지도 종종 메말라가는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저녁 달을 길동무삼아 어머니 뒤에서 리어커를 밀며 부대 짬밥을 실어다
키운 돼지, 소, 개, 유난히 씀바귀를 좋아하던 토끼들과 그 해 봄에 심은 옆밭의 채소들과
헤엄치고 고기잡던 앞개울과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앞산을 뒤로하며 마을어귀로
나와 읍내행 버스를 탈 때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하나뿐인 동생과 竹馬故友들의
이별 손짓에 눈물을 숨기며 시작한 객지 생활을 오늘날까지 전부 합쳐 조금 모자른 20여년
계속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역마살이 없지는 않은 듯하다. 개구리 울음소리에 익숙한
고막을 찢던 경적소리, 푸른 소나무 설경을 보던 망막에 비친 하늘을 가르는 거인같은
아파트들, 와글와글 끓는 수많은 학생들 속에서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그 해 청덕국민
학교를 졸업[84년]하고 그 아래 위치한 고려중학교[85-87년]로 자리를 옮겨 두 해
뒤따라 상경한 동생과 시작한 자취생활은 혈육과 함께한다는 반가움도 잠시, 이내 어린
마음에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내어 지금도 마음 한구석 그늘진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드리워졌다. 추운 겨울 어머님의 품을 울타리 삼고 아버님의 호탕한 웃음에 파묻혀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지내는 주인집 또래의 친구를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허름한
시멘트블록벽만이 살을 에는 바람으로부터 두 형제를 그나마 막아주었고, 한 밤 중
이불 속에서 흐느끼는 동생의 울음소리로 자취생활은 얼룩졌고 몇 일을 연이어 먹던
구더기같은 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