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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학항등식1,대학생활-태권도=먼지


 우연히 본 포스터 曰, '생각하는 야성, 행동하는 지성. 태권도부'란 어귀에 먹던 밥을

남기고 그 길로 찾아나서 한두 시간을 헤메다 포기하려는 순간, 아련히 들리는 소리!

'앗.퍽...앗.퍽...태권' 희미한 소리를 붙들고 이른 곳이 바로 나의 대학시절에서 빼면 먼지

밖에 남지 않는 태권도부였다. 술자리에서의 一見 땅에 발도 딪지 않고 춤추는 듯한

허황된 언어와 술집의 탁한 공기를 가르는 의미없는 몸짓에 반감을 느끼던 나에게는

언어보다는 몸에서 배어나온 땀을 통한 끈끈한 무언의 진실된 몸의 대화, 허기진 배를

참으며 내뱉는 기압, 허공을 가르던 주먹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던 그 발길질은

그렇게도 추구했던 바, 사막의 오아시스 그것이었다. 운동 후 산기슭에서 멀리 아가씨들의

곁눈질을 못본채하며 자랑스레 드러내고 씻던 알몸의 가운데 정면, 폭포가에서 알몸으로

수영하고는 주위에 있던 여학생들에게 관람료를 뜯어내 마시던 술, 관악산 연주암을

옥상오르듯 뛰어오르던 '준비'운동 등등은 대학시절 빛바래지 않는 몇 장의 사진같은

추억이다. 예전 집에 가면 아버지께 배운 운전실력을 믿고 막무가내로 응시한 2종운전

면허[92년 12월합격] 실기를 입학 후 1년 동안 8전9기로 간신히 취득하고, 건축의 'ㄱ'을

배우며 보냈다. 낮에는 태권도에, 밤에는 비디오 감상에 미쳐 건축의 'ㅊ'을 배우며 다음

해를 보내고, 3학년 때 드디어 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다름아니라 입부 당시 200여명의

동기들은 오간데 없이 혼자 남게 되었는데, 차기 부장을 뽑을 때가 되었다.

매일매일 도장에서는 후배들 운동지도를, 술집에선 마무리운동을, 선배란 선배는 모두

찾아가 끈질기게 얻어먹어 선후배간 유대를 강화해야하는 태권도부장의 자리와

3학년 설계과목 전공필수가 시간이 겹친 것이다. 4년 대학졸업에 지장이 있는 중차대한

문제였으나, 시이소오 법칙에 따라 결정했다. 즉, 전공이야 내년에 들어도 그다지

상관없는데 태권도부장[94년]의 기회는 올해밖에는 없는 터라, 경중을 따져 후자를

택해 빨간날만 빼고 매일 운동한 경험은 지금도 일말의 후회없이 좋은 자기성장의 기회

였다. 다만 좀더 너그러운 마음과 깊은 판단력으로 후배들 지도와 카네기같은 태권도부

운영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수업과 운동에 모두 최선을 다하자는 애초의

계획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중대결단이 필요해 졌다. 저녁과 밤 시간이야 운동과 술에

할당된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태인지라, 고심 끝에 내린 것이 신문배달. 새벽 2시에

택시타고 가서 술김에 돌리고, MT 갔다가 다음날 새벽 이빠이 찬 술을 벗삼아 신문을

돌리고 와서 또 술을 마시던 기억 등등 다섯 달 동안 외줄타기의 위태로움 속에서 돌린

신문배달을 통해 자신의 한계와 내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런

막가는 생활의 와중에서도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학부생활 중 제대로 들었던 8학기

중에서 가장 높은 학점[4.3만점에 3.60]을 땄던 일로 인해 부장의 전통-2.0이하의

학점과 5-6년만의 졸업-을 깬 배신자란 곱지않은 눈초리와 추방의 목소리에 한 때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생전 처음 흰 띠로 운동을 시작해 현재 네 번째 도복을 입고

있는데 실력은 2단밖에 안돼 올여름에 모기 한 마리 제대로 잡지 못했다.

내맘같지 않아 후배들 인솔하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점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끝까지

믿고 의지할 것은 '사람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깊은 이해'임을 비싸게 배웠다.

 


[6] 대학항등식2, 대학생활-귀동냥=무식